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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 장사리

by myview-3 2025. 6. 2.

영화 장사리 포스터

 

 

2019년 개봉 당시 조용히 흘러갔던 영화 한 편이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장사리: 잊힌 영웅들’. 이 영화는 전쟁의 화려한 영웅담보다는, 잊힌 이름들과 눈물 젖은 흙 속에 남겨진 소년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여줍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장사리’를 바라보는 것은, 단지 과거의 전쟁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되짚는 일입니다.

잊힌 전장에서 울려 퍼진 감정: 학도병의 시선

영화 ‘장사리’는 거대한 국가의 작전보다, 그 한복판에 던져진 ‘소년들’에 집중합니다. 그들은 군번도 없고, 훈련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 총 쏘는 법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한밤중의 파도 위를 건너 상륙작전에 투입됩니다. 그 숫자, 772명. 영화는 이들이 어떤 전략적 목적에 쓰였는지를 말하는 대신, 그들의 눈높이에서 벌어진 전장의 참상을 따라갑니다. 학도병들은 어른이 시키는 대로 바다를 건넜고, 누군가는 바다에서, 누군가는 모래사장에서, 또 누군가는 총을 처음 쏴보기도 전에 쓰러집니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누군가의 영웅담도, 화려한 전투도 없습니다. 오히려 관객은 끊임없이 묻습니다. ‘이 아이들은 왜 여기 있어야 했을까?’, 그리고 ‘이들의 이름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 감정선은 절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카메라의 거리에서 이들을 지켜보지만, 그들이 겪는 절망과 공포, 그럼에도 발을 떼는 용기는 강하게 다가옵니다. 한 장면, 한 대사, 심지어 한숨 하나조차 가볍지 않습니다. 그 감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충분히 닿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의 책임 없는 판단 아래에서 이른 어른이 되어야 했던 경험을 갖고 있으니까요. ‘장사리’는 그렇게 시대를 초월해 말합니다. “전쟁은 총을 드는 것만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다. 그전부터 이미 많은 것을 잃는 일이다.” 그 울림은 소리 없이 조용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극적이지 않아서 더 진실해 보였던 이야기의 완성도

‘장사리’가 특이한 건, 전쟁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극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루하거나 힘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조용한 리얼리즘이 이 영화의 진짜 힘입니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큰 전략, 배신, 반전, 감동의 클라이맥스를 전제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장사리’는 그 모든 공식을 거부합니다. 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더 뛰어나다거나, 더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학도병 개개인을 오롯이 따라가고, 그들이 흙탕물 속을 기어가고, 첫 사격에 몸을 떠는 장면, 친구가 눈앞에서 죽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을 깨무는 장면이 가슴을 찌릅니다. 특히 김명민 배우가 연기한 이명준 대위는 ‘위대한 리더’가 아니라 ‘고민하는 리더’로 그려집니다. 지휘와 명령 사이, 살아야 한다는 본능과 누군가를 보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얼굴. 그게 바로 우리가 지금 시대에 바라는 책임자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종군기자 역할로 등장한 메간 폭스는, 전쟁의 외부 시선을 대표합니다. 이 인물의 존재는 단순한 외화 마케팅 수단이 아니라, 한국전쟁이 어떤 식으로 세계에 소비되고 왜곡되었는지를 작은 상징으로 보여주는 장치였습니다. 이 영화의 힘은 어떠한 액션보다는 정적에 있습니다. 침묵의 순간, 숨을 고르는 시간, 그 안에서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배우고, 그저 관찰자가 아닌 기억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진정성과 시대 흐름이 만든 입소문

2019년 당시 ‘장사리’는 흥행 성적으로만 보면 기대 이하였습니다. 100만 명 남짓한 관객 수. 하지만 그 후로 3~4년이 지난 시점부터, 이 영화는 사람들 입에서 조금씩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 이 영화는 단지 ‘재개봉되었다’는 이유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 영화와 닮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시대의 분위기입니다.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다시 전 세계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기억의 중요성과 희생의 가치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장사리’는 단지 오래된 영화가 아니라, 지금 이야기해야 할 이야기가 된 것이죠. 또 하나, OTT 플랫폼의 힘도 컸습니다. 넷플릭스, 티빙 등에서 이 영화가 재발견되면서 젊은 세대가 처음으로 이 영화를 접했습니다.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이 영화를 해석하고 공유하는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입소문이 시간이 지나며 확산되는 희귀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장사리’는 진심으로 만든 영화였습니다. 상업적 의도보다,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정직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이 관객에게 천천히 전염된 것입니다. 이런 영화는 시대가 부르면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장사리가 남긴 것, 그리고 앞으로의 영화에게 던지는 질문

‘장사리: 잊힌 영웅들’은 상업적인 기준으로만 본다면 화려한 성과를 남긴 영화는 아닙니다. 거대한 흥행 수치나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를 휩쓸지도 않았고, 화제성 있는 배우 중심의 마케팅으로 관객을 몰아세운 작품도 아니었죠. 그러나 그 조용한 행보 속에서 이 영화는 아주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흔히 전쟁영화를 본다고 할 때 기대하는 것은 거대한 전투 장면, 웅장한 음악, 그리고 마지막에 정의가 승리하는 듯한 구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사리’는 그 어떤 것도 시끄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관객에게 기억하고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잊힌 이름들, 돌아오지 못한 소년병들, 그리고 말없이 명령을 따르다 사라진 사람들 말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와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친구였으며,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시절의 거울 같기도 했던 그들. 그들을 통해 영화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스스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런 영화 한 편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는 것은 단지 잘 만든 이야기를 넘어선 가치입니다. ‘장사리’는 결국 한 편의 영화가 어떻게 기록 이상의 기억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우리 삶에 어떤 식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2025년의 오늘, 우리는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정보와 콘텐츠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진심을 다한 이야기를 갈망하고 있기도 합니다. 장사리는 바로 그 갈망에 조용히 응답한 영화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이 입으로 전달하고, 수업 시간에, 블로그에, 대화의 자리에서 거듭 소환되는 이 영화는 어쩌면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지속력’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사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우리가 그 기억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줄 때, 비로소 이 영화는 완성됩니다. 지금 필요한 건 또 다른 전쟁영화가 아니라, 이처럼 말없이 오래 남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의 책임 있는 기억력일 것입니다.